첫 개봉예정 날짜가 2018년 3월 16일. 그리고 최종개봉일 2023년 6월 15일(한국기준 14일). 5년을 넘게 기다린 지긋지긋한 영화라 저항할 틈도 없이 프리미어 개봉으로 보고 와버렸다.

그동안 난 이제 너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내 모든 덕질과 그 이후의 배신들에도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다고 외치기 위한 자기합리화의 방법이기도 하다. 네가 한 짓에 더 실망하고 슬펐던 건, 역설적으로 네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에 목소리를 내고 화를 내야 하는 거라고, 너한테서 배웠으니까.

누구보다도 사람들을 부추겼던 사람으로서 죄송스러움과 민망함도 느낀다. 지금 이 글을 이대로 발행해도 되는 걸까, 어쨌든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이래도 되는 걸까, 고민도 된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이기적이고 내 방식대로 구는 무책임한 덕질을 했던 터라 오늘의 감정은 절대 그냥 흘러보내지 않고 불필요한 말까지 덧붙여 기록해두고 싶다. 아마 이렇게 남겨두고 다신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덕질을 함께 했던 노트북은 이제 고물덩어리가 되어 켜는 일이 별로 없다. 어차피 그 덮개를 열면 담겨있는 거라곤 죄다 이놈 흔적 뿐이고, 스마트폰 시대로 변화하던 순간에도 내가 꾸역꾸역 노트북을 붙들고 있었던 것도 이놈 때문이었다. 바꾼 휴대폰에는 이전 트위터 계정을 로그인 해두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묻어두고 살다가 이번 개봉 소식을 들은 거다. 웃기지만 당연하게도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아직 내 방에서 이 놈을 완전히 내쫓지는 못했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러 갔다. 근 4년 반만에 극장 스크린에서 만난 나의 구원자. (이 명대사를 감히 이딴 놈에게 사용한 점, 이 명대사를 사랑하는 분들께 죄송합니다) 일단은 반갑기도, 얼떨떨하기도 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우당탕탕 사고뭉치 배리라는 캐릭터 자체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처음 엄마를 다시 마주한 배리의 눈빛에서 드디어 에즈라를 만났다.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담은 그 눈빛. 내가 그토록 사랑한 에즈라. 가슴이 찡한 장면이라는 핑계로 조금 울었다. 

한때 에즈라를 보고 있으면서도 에즈라가 아닌 사람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시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 모든 일이 터졌었지요 하하... 비슷한 인간들끼리 모인 공동체에서 밤낮없이 오갔던, 하지만 어디에도 할 수 없는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걱정과 원통함과 온갖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각자의 감정들을 모아서 우리는 우리를 버텼다. 그러다 그렇게라도 지탱해오던 지지대에서 어느 순간 내려와버린 때부터는 그냥 모든 걸 회피하고 살았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장면의 그 눈빛을 봤을 때 언젠가의 에즈라를 만난 것 같아서 자꾸 울고 싶었다. 나를 만들고 나를 구원해준, 지금도 내 뿌리의 가장 단단한 역할을 하는 그 사람을. 이놈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건 아니고, 결국 나를 만들어낸 사람이 허구는 아니었다고 위안 삼고 싶었나보다. 

 

"Don't listen to me. I change my mind all time."

이 말을 울고 싶을 만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다시 곱씹고, 다시 체화시키고 싶은 밤이라 어떻게든 기록하려고 했다. 이제 이 블로그는 다시 로그아웃을 하고 또 오랫동안 찾지 않을 것이다. 내 공간에서, 내 방식으로 기억하고 살아야지. 

Posted by duc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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