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화보] 에즈라 밀러에 대하여 / We need to talk about Ezra Miller (i-D매거진)
Ezra Miller/인터뷰 2015. 8. 24. 21:48 |[ we need to talk about Ezra Miller ]
2015년 5월 28일
최근 에즈라 밀러와 그의 여자친구(알려지지 않은 연애 상대)는 한밤 중에 몰래 그가 뉴저지에서 어렸을 때 살던 집을 찾았다. 그 유쾌한 소동은 그에게 향수를 안겨 주었다. 그 곳에서 살고, 일찍이 어린이 오페라단으로서 그 도시와 소통했던 것은 수 년이 지난 일이다. 이제는 22살이 된 에즈라는 연기 천재에서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미친듯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케빈에 대해서'의 미국 최악의 공포를 안겨다 준 아이로, 그리고 '월플라워'의 카리스마적인 패트릭으로서(두 작품 모두 컬트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에즈라는 준비된 슈퍼스타로서의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매니 픽시 드림걸(역:드라마나 영화 속에 흔한 여주인공들. 4차원 여자 주인공. ex: '500일의 썸머'의 썸머)의 남자 버전이 되가는 것과 동시에 그가 대마를 사용했던 것이나 퀴어 성향에 대해 얘기한 것은 더더욱 그럴 만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여름에 개봉하는 세 편의 영화(마담 보바리, 트레인렉, 스탠포드 감옥실험) 속 캐릭터, 그가 가끔 어울리는 그의 밴드 Sons of an Illustrious Father, 그리고 최근 발표된 플래시로서의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까지, 그는 새로운 '브랜도(역:말론 브랜도, 전설적인 영화배우 중 하나)'를 닮아가고 있다: 그가 독특했던 것만큼 그에겐 그만한 재능이 있었다. 우리가 만났을 때, 에즈라는 레오파드 무늬의 외투를 입고 가죽끈으로 된 목걸이를 매고 있었다. 그 소년에겐 존재감이 있었다: 말을 할 때 그는 상대를 뚫어지게 쳐다봤고, 그 나이 때의 이상적인 아티스트들 다수가 그렇듯이, 조심스러웠다. 그는 정말 신중했다.
어렸을 때 하던 오페라는 왜 그만둔 거에요?
변성기 때 그만뒀었죠. 그리고 그 때 공연예술로만 채워질 수 있는 거대한 공허함이 찾아왔어요. 그래서 저는 그 해 여름에, 특별한 어린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유토피아인 Buck's Rock이라는 캠프에 갔어요. 그런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죠. 그리고 전 즉흥 코미디, 스케치 코미디, 스탠딩 코미디와 아주 잠깐 천재적인 광댓놀이를 보여주는 광대 샵에 갔어요. 저는 좀 괴상하고 펑크한 애였죠. 많은 사람들이 제가 여자애라고 생각했었어요; 제 머리는 분홍색이었고, 조종사 고글을 쓰고 있었거든요. 아마 그 날이 제가 받은 가장 진지한 연기 수업이었을 거에요. 그것보다 더 진지한 연기 수업은 해본 적이 없었었어요. 전 대마를 피우기 위해 Buck's Rock을 뛰쳐 나왔죠. 우린 대부분 순교자인 척 했었어요: 그래피티 캠페인도 했고 플래시몹 댄스도 있었고.
왜 연기가 당신에게 매력적이었을까요? 그리고 지금까지도요.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그들이 부여받은 정체성의 한계를 넘어 그들을 확장시켜 가는 걸 깨닫는 것이 흥분되기 때문이죠. 어렸을 때 재밌었던 건 지금도 여전하게 똑같이 아주 재미있어요. 어렸을 때 연기를 전 이렇게 표현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건 모두 할 수 있다. 지금은 이렇게 표현할 것 같네요: 나의 감정이입이 나아갈 수 있는 것만큼 나도 멀리 나아갈 수 있고, 저의 universal self를 바라보도록 꿈꿀 수도 있다고요.
그 universal self란 건 어떤 거죠?
그 질문은 잘난 척하는 배우보다 과학자나 신비론자들한테 물어보세요.
좋아요.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 뭐가 자기 자신과 제일 가까운거 같아요? 그리고 제일 거리가 있는 건요?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제가 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겠어요. 하지만 그건 제가 여전히 알아가고 있는 거에요. 제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지워버리고, 제가 연기한 사람은 미친 살인마라고 정의 내리는 건 쉽죠. 제가 연기했던 열광적이고, 감동적이면서 끝없이 에너제틱한 캐릭터가 저와 가장 가깝다고 얘기하는 것도 쉬운 일이고요. 하지만 전 그렇게 말하지 않을래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케빈에 대하여'에서 연기가 당신이 배우로서 걸을 길에 영향을 끼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케빈을 연기한 건 절 아주 성장시켰고, 유익한 경험이었어요. 저를 자극시켰고, 저의 지평선을 넓히게끔 했고, 저의 게임을 성장시키려고도 했죠. 제가 함께 작업한 대가들과의 영역을 유지하기 위해서요. 악몽을 꿨었어요. 전 인간 체제 속의 정말 어두운 면을 드러내야 했잖아요. 제가 그런 것들에 압박을 느끼게 되는 나이가 다가왔단 점에서 그 경험은 어쩌면 저에게 손해일 수도 있었어요. 어떤 기대치가 있고, 인간으로서 그 기대치를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식의 대화에서, 그리고 당연히 인터뷰에서도요. 그럴 때마다 그런 게 있었어요. 케빈과 함께하면서, 많은 기자들이 그 캐릭터에 대해 기대를 했고 그게 저에게 어둡고 음울한 사실을 안겨 주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죠. 인간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겁에 질렸단 걸 알게 되면, 둘 중 하나예요. "이런 끔찍한 기분을 느끼고 싶진 않아 ."라거나 "오, 내가 힘을 얻었구나, 사람들이 날 무서워하는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17살이었던 저에게 그런 요구들은 저를 두렵게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그런 삶을 좀 살고 나니까 전 이 세상에서 내가 계획하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란 걸 확실히 알았아요.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우리를 정의할 때, 우리가 적대적인 상황에 놓여졌을 때, 그리고 일생동안 우리는 누구인가를 결정지어야 하는 순간들이기도 하죠.
그럼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됐으면 해요?
올더스 헉슬리는 그의 인생동안 엄청나게 마약을 했고, 많은 구루(전문가)들과도 어울렸고, 대단한 과학자, 신비론자, 철학자, 사색가 모두와 모든 영역에 대해 얘기했었어요. 이게 사실인지는 저도 모르지만 제가 올더스 헉슬리의 죽음에 대해 들은 얘기가 있어요: 그는 LSD에 중독 돼서 죽길 원했대요. 그래서 자기 정맥에다가 거의 천 번의 LSD를 놓은 거에요. 그의 친구가 그가 죽어갈 때 물었죠, 위대한 사실이 뭔지 아는가? 올더스 헉슬리는 말했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려고 노력해야 할 거 같군." 이 얘기는 제게 큰 울림을 줬어요. 저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건 히피들의 헛소리 같은 거기도 하지만, 제 생각엔 이 길이 인정이 많은 사람이 되는 방법인 거 같아요. 우리가 엿같은 종족처럼 굴든 말든, 그들은 사랑해야 해요.
당신이 퀴어라는 사실이 젊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줬어요.
그 얘기는 별 생각 없이 했던 거였어요. 인간으로서 비슷한 점들에 대해서 얘기했던 대화였는데, 그게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이야기가 실렸죠. 주목을 받을 정도의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 사람에게 얘기한 거에요. 지난 2년이란 시간동안 미디어와 문화가 그 얘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보는 건 흥미로웠어요. 제가 저를 퀴어라고 얘기했을 때, 저의 애인 대부분이 여성이었다고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렇게 떴죠: <게이 배우, 에즈라밀러>. 제가 절 퀴어라고 얘기했던 건, 단순히 우리가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는 지에 있어서 이분법에만 따르고 싶진 않다는 의미였어요. 퀴어라고 얘기할 수 있어서 기뻐요. 먼저 그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세상에 나를 드러낼 수 있는 특성을 얘기할 때, 그게 사생활에서 우리가 실제로 주장하는 특성과 가깝다면, 아마도 결국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편안하고 변함 없을 수 있잖아요.